주일 예배

청년주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지 않기에는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too good to not believe). 오늘 입교하는 젊은이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 청년문화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청바지 통기타 맥주 등으로 표현되던 청년문화를 분석하였습니다. 청년문화의 특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개방성과 개파성입니다. 개방성은 어느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여유였습니다. 개방성의 반대는 고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집이 있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늙은 것입니다. 굳어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방식이 젊은이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파성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개혁하고 깨뜨림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새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면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이 청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쪽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야 인류문화에 공헌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교조적이고 도그마틱하고 화석화되는 쪽으로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청년은 새시대의 힘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믿음의 다음세대인 청년들이 굉장히 힘들고 가장 손해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일자리 찾기도 결혼하기도 자식을 낳기도 집을 장만하기도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이 재난의 시대를 종식시키심으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청년주일을 맞이하여 사울왕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들의 자손들 가운데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17:6,16). 그리고 임종을 앞둔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왕의 홀은 유다 지파에 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창49:10).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키 큰 사울을 왕으로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 부었습니다. 사무엘상 13장-15장에는 사울왕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통치내용 왕정체제 정비 등은 기록하지 않고 즉위 초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 백성의 왕이 될 수 없었던 사실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적 왕 사울이 폐위되고 신본주의 왕 다윗이 예비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행자에 불과하며 역사의 근본 주권은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모두 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누구라도 왕의 자리에서 폐위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왕 초기에 아말렉 정복 전쟁 중에 범한 불순종의 죄를 보여주고 그 결과로 왕위 폐위 예언을 듣게 됩니다.
아말렉은 호전적인 사람들로 계곡에 거주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세 시대에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투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손을 들면 이깁니다. 그런데 손이 내려오면 전쟁에서 밀리게 됩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내려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나의 깃발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17:15-16). 그 아말렉을 여호와께서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절반만 순종했습니다. 아각 왕을 죽이지 않았고 포로로 잡아왔고 진멸하라고 하신 가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예물로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은 일에 대해 후회하셨습니다. 사울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안 지킨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진멸하지는 않았습니다. 철저히 다 진멸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분만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다 진멸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적당히 지켜서는 안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 들음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해서 제사가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사를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참 제사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사 드리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십니다. 감사하는 마음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시50:14), 순종하는 마음(삼상15:22), 깨끗한 마음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사1:16)라고 하심으로 깨끗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여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예언합니다.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7:21-26).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배자의 마음이 담긴 진정한 제사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진정을 다해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순종하며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적당한 타협의 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후회하게 합니다.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가장 아름답고 기본이 되는 자세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화려한 그 어떤 제사보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고백하며 그물을 내린 시몬 베드로의 순종을 본받아 사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순종의 삶을 향해 결단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사울은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은 통일 국가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키도 크고 힘도 세며 말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매우 겸손하고 순종도 잘했습니다. 백성들이 왕이 되라고 하자 사양하면서 숨기까지 했습니다.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친 공적이 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전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헤브론 동남쪽 13km 지점에 있는 유다 지파 성읍(수15:55)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내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승전비를 세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유다 지파 보란 듯이 그들의 동네에 세웠습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뽐내려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승리하신 것을 기리는 기념비가 아니라 자기의 명성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린 것은 불순종의 죄에다가 자기중심적인 교만의 죄를 더한 것입니다. 죄의 증가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불신앙으로 자기 기념비를 세운 사울 왕을 우리는 인본주의 왕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불순종에 교만을 교만에 거짓의 죄를 더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사울의 관심은 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궁극적인 관심은 늘 사람들의 평판 인정 인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겨 얻은 전리품을 취하지 말 것을 당부했건만 사울은 아말렉을 쳐서 얻은 전리품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챙겼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 순간 사울은 자신의 전쟁 공로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웁니다. 기념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세우는 것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그에게 질책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4절)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지탱해주는 권력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사무엘의 선언을 듣고 사무엘에게 간청합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30절).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는 순간에도 사울의 일차적인 관심은 백성들 앞에서의 그의 체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실지라도 그는 백성들의 인기만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자기 기념비를 세우는 인본주의적 왕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 속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사울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자기 기념비는 우리에게 유혹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었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올 때 법궤 뒤를 따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속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는 지경이었습니다. 아내 미갈이 비난을 했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우상화되는 것을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자기를 우상화하는 사울왕의 자기 기념비는 우상화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못난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 자랑으로 솟아오르는데 자기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우상화하고 자기를 경배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사울왕의 처음 모습처럼 자기를 작게 여기는 것입니다. 작게 여길 때에 하나님이 크게 여기셔서 왕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작게 여기는 겸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겸손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취할 자세입니다. 다윗은 자기는 백향목으로 만든 궁전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전은 초라한 휘장 아래에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전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마음을 보셨기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후에 일어날 왕이 성전을 지을 것이며 그 왕위가 계속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 13:22).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은 하나님을 중심하는 다윗의 신앙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함으로 자기 겸손을 주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시편131편입니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 중심이 하나님 마음에 합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자기 기념비를 부수고 겸손히 어린아이같이 하나님 품에 안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울은 하나님을 거역하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전가입니다.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이라고 책망합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의 하나님께 대한 범죄를 직접 확인하고 사울의 죄를 엄중히 책망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변명하며 정당화합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가난한 서민 출신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여 기름 부어 세운 왕들입니다. 두 왕은 모두 전쟁에 용감했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전사들이었습니다. 두 왕 모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사울은 자기가 드려서는 안 되는 제사를 임의로 드렸습니다. 제사장 사무엘만이 드릴 수 있었던 제사를 시간이 급하다는 이유로 자기가 집행함으로 죄를 졌습니다. 다윗도 모양은 다르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부하 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고 그것을 숨기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아를 전쟁의 화살 받이 삼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회개했지만 사울은 회개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은 사울의 변명이 옳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더 큰 죄를 낳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의 죄 교만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진멸하라고 했는데 다 진멸하지도 않고 명령을 행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백성이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께 제사 드리려고 가지고 왔다고 하나님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핑계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책임을 전가 시키지 말고 내 탓이고 내 죄라고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사울의 회개는 잘못했다는 고백이 없습니다. 자기변명으로 일관합니다. 자기 체면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에 거짓된 회개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연약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의 예언 앞에 즉시 회개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12:9-14)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회개함만이 살 길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책망했을 때 무릎 꿇었습니다.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말을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연약하여 죄를 짓더라도 속히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고백했지만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심판의 두려움을 피해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직도 사울 왕은 백성들에게 궁극적인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백성이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사울도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불순종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회개없음을 회개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울왕의 길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왕의 길을 따라 순종하교 겸손하고 참으로 깨어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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