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모음
1. 15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16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17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18 안으로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을 보고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그릇들과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였고 19 또 아하스 왕이 왕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그릇들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 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21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22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26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27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28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29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31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32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 마리요 숫양이 백 마리요 어린 양이 이백 마리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33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2.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레위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불은 전염성이 있다. 열정의 지도자는 잠자던 사람들을 깨워 움직이게 한다. 레위 자손들 가운데 일어난 14명의 지도자들이 그 형제들을 모아 성전 정화를 시작했다. 모든 더럽혀진 기물들을 깨끗이 하고 황폐해진 성전 내부를 수리하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 과정을 보면서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그의 과업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 한꺼번에 다 달라붙어서 아무데나 막 정화한 것이 아니라 순서와 법대로 했다. 성전 정화에는 모두 16일이 소요되었다. 1월 1일에 시작해서 16일에 끝났다. 1월 1일에 시작해서 8일 동안은 성전 낭실 즉 현관까지 깨끗하게 하고 또 이어서 8일 동안은 내부를 정결케 했다. 성전 내부의 정화는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었다. 성전 안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개혁이라고 함부로 해치워서는 안 된다. 악한 조상들이 하나님의 전을 황폐하게 하는 일은 무질서하게 함부로 했지만 그 전을 다시 정결케 하는 일은 그렇게 해선 안 되었다.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하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해야 했다. 16년간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시키는 데는 적어도 16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차근차근히 하나님의 법대로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했기에 막 밀어붙일 수 없었다. 더럽혀진 성전 기구들을 깨끗이 하면서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 울며 회개했을 것이다. 가슴 절절한 그런 회개의 눈물과 묵상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영적 개혁이다. 그 과정 하나하나 속에서 우리 모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법대로 차근차근 정결하게 정화해 나가야 한다. 개혁은 함부로 조급히 밀어붙이기만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성전을 정화한 후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제사가 다시 행해졌다. 히스기야가 아침 일찍 일어나 나라의 모든 귀인들, 지도자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 1) 히스기야는 먼저 속죄제를 드렸다. 속죄제란 고의성 없이 무지하여 범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원래 속죄제는 드리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달랐다. 제사장이 범죄 했을 경우엔 수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평민은 암염소나 암양 등의 순으로 각 계층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부왕 아하스 때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각각의 제물들을 7마리씩 바쳤다. 이는 그들의 죄가 너무나 컸음을 말해 준다. 왕과 회중이 속제 제물로 드릴 숫염소에 안수한 것은 자신의 죄를 그 동물에 옮기는 전가의 상징적인 의미로서 자신과 희생 제물을 동일시하는 의식이다. 자기 대신 그 짐승이 피 흘리고 죽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죄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새기는 것이다. 이 속죄일 당일에는 모두가 하루 종일 금식했으며 해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과 화해했다.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속죄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속죄제 때 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모든 기름은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가죽을 포함한 나머지 부분은 영문 밖에서 불살라야 했다. 그것은 저주받은 자가 버려진다는 뜻이었다. 훗날 예수님은 죄지은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희생 동물처럼 영문 밖 갈보리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제물의 피는 성소 휘장 앞에서 7번 뿌렸는데 이것은 그 피로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완전히 사했음을 상징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2) 속죄제를 드리고 나서 번제를 드렸다. 번제는 희생 제물 전체를 완전히 태워 버리는 유일한 제사로서 희생 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제사장은 항상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했다. 이는 항상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눈여겨 볼 것은 번제가 드려지는 동안 레위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회중은 경배했다는 사실이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과 찬양의 삶이 맞물리는 것이다. 귀인들과 레위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했다고 했다. 회개는 뼈를 깎듯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드리고 나면 그래서 주님의 용서를 마음속 깊이 체험하고 나면 엄청난 영적 기쁨이 터져 나온다. 이루 형언키 힘든 찬양과 감격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3. 3) 그 후에 백성들로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게 했다. 제사와 찬양의 경배를 마친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감사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권고한다. ‘이에 히스기야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 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회중이 드디어 제물과 감사 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을 가져오니’(대하 29:31). 제대로 된 예배의 결론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한다. 제물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헌신의 표현이다. 예배의 은혜는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만이 아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있어야 한다. 결코 하나님이 돈 없어서 내라고 하시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액수나 분량을 정해 주지 않았다. 각자 알아서 가져왔다. 그러고도 더 드리고 싶은 사람은 번제물까지 가져왔다. 하나님께 돈이나 시간, 재능을 헌신할 때는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 받은 은혜가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리자. 히스기야의 권고에 따라 백성들이 즐겁게 드린 헌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 제물을 처리할 제사장들이 부족했다. 원래 번제물은 가져온 자가 죽여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떴는데 이렇게 공적으로 제사 드리는 때는 제사장들이 맡아서했다. 제사장들 수가 부족해서 레위인들이 도왔다고 했는데 이것은 제물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우상숭배에 참여했던 제사장들이 영적인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이 성결케 하기 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대하 29:34) 여기서 '성심’은 히브리어로 ‘야사르’인데 이 말은 진실함 참됨이란 뜻이다. 우상숭배를 하고 세속적으로 살던 과거를 제사장들이 제대로 회개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을 상실한다. 직분이나 위치가 영적 권위를 주는 게 아니다. 늘 하나님 앞에 새롭게 다듬어진 영성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성전 정화와 예배 회복이 순조롭게 이뤄짐으로써 그날에 왕과 온 백성이 기쁨을 누렸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대하 29:35-36). 히스기야와 온 백성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일을 보고 함께 기뻐했는데, 그것은 그 일이 너무 순식간에 빨리 순조롭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4. 우리는 여기서 3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첫째 히스기야의 결심에서 예배 회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일이었다. 선한 왕 히스기야의 거룩한 결심과 실천 성전 정화와 예배 회복의 이 모든 일들은 사람이 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다 예비하시고 가능케 하신 일이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고 순조롭게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느리게 움직이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가 오면 순식간에 폭풍처럼 움직이신다. 금방 기적 같은 일들을 이루신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보고 단 하루 만에 남자 5천명이 예수께로 돌아왔다. 본문 말씀처럼 마치 갑자기 된 일(대 29:36)이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셋째 진정한 예배와 헌신은 축제로 이어진다. 백성들은 전에 없는 많은 예물을 주님께 바치고 아까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기뻐했다. 하나님께 뭔가를 드릴 때 아까워하고 아쉬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얼마나 드릴 것인가를 누가 결정해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히스기야는 결코 누가 얼마나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릴 감사 제물을 다 각자 가져오라고 권유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격으로 드리니까 다들 드리면서 오히려 기뻐했다. 하나님께 드릴 때 기쁨이 있는가? 진정한 회개 진정한 예배의 회복은 진정한 헌신 진정한 드림을 낳는다. 그때에 축제가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성전에 있었다. 예배에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며 성전 문을 닫아 버렸을 때 은혜의 통로를 닫아 버렸을 때 나라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져 들었다. 오늘날 우리 마음속의 성전은 어떤가? 하나님께 늘 활짝 열려 있는가? 거기에서는 날마다 하나님께 살아 있는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가? 진정한 회개와 헌신이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날, 위기에 처한 나라는 다시 영광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항상 참된 예배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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