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사순절 셋째 주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신앙의 순례의 길을 걸으며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배의 본질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예배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며 헐어야 할 것과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예레미야의 세 번째 설교(7:1-8:3)의 시작 부분입니다.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집 문은 곧 성전 문입니다. 바깥뜰과 안뜰 사이에 있는 ‘새문’이라고 불리는 문에 서서 절기에 제사 드리러 오는 백성들에게 위선적 신앙을 집중 고발하고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가 예레미야의 설교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헐어야 할 것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형식적 위선적 혼합 성전 예배를 헐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참된 믿음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9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종교를 개혁했던 요시야 왕이 죽은 후에 3개월 왕 노릇한 여호아하스를 뒤이어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으로 세움 받은 여호야김은 다시 우상을 세웠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 우상을 버리고 산당을 허물었던 것을 뒤엎고 다시 우상숭배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숭배도 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혼합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예배는 정말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역동적으로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참된 예배자를 통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의 통로가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예배, 참 예배, 영적인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된 예배를 떠났습니다. 위선적 형식적 혼합 신앙을 가진 거짓 성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시대에 예언했습니다. 이 같은 거짓 성전 예배를 고발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 전체가 황폐하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는 그 제사에 합당한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 거짓 성전 예배에만 열심인 자들의 이중성을 지적하십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 부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해당되지 않습니까? 성전 예배를 드리는 한, ‘성전과 그 예배드리는 자는 영원하다’는 그릇된 확신이 유다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릇된 확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자의 삶과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형식적인 제사보다 상한 심령의 순종을 더 원하십니다(삼상15:22). 사무엘상 15장 17절로 23절에 사울왕과 사무엘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왕은 제사 드리기에 좋은 짐승을 남겨왔습니다. 그 때에 사무엘이 분노합니다.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예배는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참 예배의 모습입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예배를 안 드리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건 교만입니다.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망할 부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고, 그리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부류를 찾으십니다.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신12:11, 왕상8:29)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은 전혀 해를 입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말씀으로 오해했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외에는 어떤 구원의 보증도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전은 보증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불순종하면서도 성전과 성전 제사가 유지되는 한 자신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던 백성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구원의 보증물이라고 생각한 성전도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고 실제로 주전 58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평안하다는 거짓말을 듣고 자기들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을 거듭 되풀이하는 것은 마치 마술 주문처럼 들립니다. 예배만 드리면 안전해 이렇게 스스로 오해하고 단정 짓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는 불의를 행합니다. 하나님의 십계명 중 6, 7, 8, 9, 2, 다섯 개의 계명을 어깁니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야, 이 엉터리야’ 하고 야단치고 있습니다. 거짓 우상 형식 위선을 헐어야 합니다. 오직 상한 심령 경건한 심령으로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말씀대로 사는 참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참 믿음을 일으켜 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인간의 탐욕적 욕망을 헐고 영과 진리의 예배를 세워야 합니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는 도둑의 소굴을 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청소하십니다.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드릴 때 1년 된 흠 없고 정결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이 검사하여 합격을 시켜야 제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먼 지방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이 같은 온전한 희생제물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뜰 이방인의 뜰에서 제사에 필요한 소와 양과 비둘기 매매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빈부의 격차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나뉘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성전을 배경으로 사업하는 ‘장사치’라고 부릅니다. 이 장사치의 배후에는 제사장 그룹이 있었습니다. 선의의 목적 제사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짐승을 팔았습니다. 거기서 팔린 제물은 제사장의 검사 없이 합격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리한 사업을 제사장들이 상납금을 받는 조건으로 특정 장사치들에게 넘겼습니다. 그 권리는 점점 탐욕의 고리가 되었습니다. 권리금은 자꾸 올라갔고 특정 장사치의 독과점 행위와 폭리를 취하는 탐욕이 묵인되었습니다. 비리가 클수록 상납 금액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장사가 잘 될수록 제사장들은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행위는 성전 제사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탐욕이었고 형식적으로 제사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장사하는 집은 이익이 최대 목적입니다. 그래서 장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탐욕의 전당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탐욕의 집 장사하는 집을 헐어야 합니다.
스무 살 유대인 남성은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대속의 의미로 반 세겔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통용되는 로마 헬라의 동전에는 황제 얼굴이 그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성전세로 내는 것은 불경한 신성모독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동전 반 세겔로 드려야 했기에 환전상이 필요했습니다. 환전은 그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환전 수수료가 더 붙습니다. 여행 중에 환전을 합니다.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계속 환전하면 나중에는 돈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수료를 이익금으로 가져가는 환전상들은 성전세를 관리하는 산헤드린 공회의원들에게 뇌물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환전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장사치는 제사장 그룹에게 환전상은 공의회 회원에게 상납해야 했습니다. 탐욕의 온상입니다. 비리의 온상입니다. 서로 더 많은 상업적인 수익을 위해 쟁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장소가 탐욕의 상업적 목적에 의해 오염되는 것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심판의 상징인 채찍을 만드시고 그것으로 내몰았습니다. ‘탐욕을 가져가라.’ ‘이권을 가져가라.’ ‘욕심을 가져가라.’ ‘제사장의 비호를 받는 장사치 물러가라.’ 산헤드린 공의회의 비호를 받는 환전상은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진리와 영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부패와 탐욕을 헐고 진정한 예배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탐욕의 세상에서 진정한 영과 진리의 예배로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 못 박아 헐고 새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보면서 장사치와 환전상을 통해 이득을 챙기던 이들은 메시야의 권위에 위압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습성대로 자신의 경제적 손실과 권위 상실에 대한 쓰라린 마음을 격앙된 어조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따지고 있습니다. 도전받은 기득권이 예수님의 권위를 묻고 있습니다. 참 선지자는 표적을 통해 자신이 참 선지자임을 증명했던 전통에 따라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가 예언의 성취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임한 것 자체가 표적인데 그들은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몸에 비유하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최대의 표적이고 최후의 표적입니다. 성육신 하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구속사역을 행하신 주님이십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 배척한 유대인의 모습은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배척과 불신앙 계속되는 불의와 허물된 죄악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허물어져야 합니다. 부수어야 합니다. 무너져야 합니다.
‘무슨 표적을 보일 것이냐?’ 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자신의 몸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부활 다시 사심 일으킴을 말합니다. ‘다시 살리다’(에게이로)는 미래직설법 능동태입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주체가 되셔서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말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주전 959년에 지어졌습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주전 516년에 지어져 헤롯 성전 지을 대가지 훼손과 복원이 반복되었습니다. 주전 19년에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주후 63년경 알비누스 총독 때에 완공되었습니다. 46년 동안 짓고 있던 본문의 시점에서 보면 그 때가 주후 27년경이 됩니다. 46년이나 짓고 있는 성전이 아직도 완성 안 되었는데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네까짓 것이 삼일 만에 일으킨다고 말도 안돼’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전인 것입니다.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무너뜨리고 부활의 생명 새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그 성전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것을 주님의 십자가 부활 이후에야 제자들이 알아차렸습니다.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헐어버리고자 하고 죽이고자 했지만 몸을 지니신 예수님 자신은 바로 그의 부활에 힘입어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로운 '성전', 다시 말해서 종말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셨습니다. 부활의 생명 그것을 이 땅 위에 마련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의미이며 과제였습니다.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순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우상을 허물고 참 하나님 믿음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탐욕을 허물고 영과 진리의 참 예배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허물고 부활의 생명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참된 믿음, 참된 예배,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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