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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23년 4월 9일<그가 살아나셨다>
2023-04-09 13:14:2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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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다. 그가 살아나셨다!’ 부활하신 주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부활의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시편 71편은 다윗이 백발이 성성할 때 압살롬의 반역과 아도니야의 반란을 배경으로 비탄의 심정을 하나님께 하소연한 노래입니다. ‘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19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반역자 반란군에게 쫓기는 다급한 상황에서, 절망과 사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취적인 은총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인생 말년 노시인 다윗의 신본주의 신앙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절대자 되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 복될 것입니다. 신앙의 왕이 불신앙의 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신앙으로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20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 역사를 읽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과 우주와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우리의 삶이 가능합니다. 구속사적인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주의 의가 하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위대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상천하지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고백합니다. 이는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십자가의 고난을 넘어서 다시 살리시고 무덤에서 다시 이끌어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는 여인들의 빈 무덤 발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그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두 명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무덤에 갑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그 주일 오후쯤에 예루살렘에서 11km 떨어져 있는 엠마오로 가는 글로바와 또 한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하는 동안에도 예수신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대화에 관해 묻자 그들은 문자 그대로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글로바가 말합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체류하였으면서도 요즈음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합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그들의 관점을 듣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합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간략한 역사를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에게 동조하는 유대인 평균 정도 지식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강력한 선지자였고 유대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에 의해 정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관점은 그날 아침에 일어난 특이한 사건을 말합니다. 어떤 여인들이 무덤이 빈 것을 보았고 예수의 부활을 선언한 천사에 관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들이 가서 확인했는데 무덤은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동행하던 낯선 나그네 예수님은 그 두 제자를 향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예언을 더디 믿는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길거리 가정교사 같았습니다. 요한복음 209절에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했는데 딱 그런 상태였습니다. 마을이 가까워졌을 때에 예수님은 마치 길을 더 가려고 하시는 듯 행동하셨습니다. 두 제자는 저녁에 함께 머물기를 강권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에 따라 저녁 식탁에서 빵을 가지고 기도하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이 순간에 두 제자의 눈이 영적으로 떠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길에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속에서 뜨겁지 않더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그가 살아나셨다. 선포한 것입니다.

 

첫째로 그가 살아나셨다부활을 선포하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두 제자는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대답은 17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두 제자의 문제는 그들이 낙담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했으나 기대가 꺾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했고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도록 예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주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우리의 마음은 너무너무 가벼워질 것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보입니다. 두 제자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성경을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메시야가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력하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회심 전에 유대교의 지도자를 꿈꾸던 젊은이였습니다. 베냐민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가말리엘 문하생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종교적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목숨 걸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교인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결정적인 만남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22:6-8)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빛 가운데 거하니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구세주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그 다시 사셨다고 고백함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증거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그가 살아나셨다고 부활을 선포하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4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그것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단정 짓습니다. 그 어떤 것도 즉 자연적인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권능자 하나님은 그가 보내신 메시야를 죽은 자 가운데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실 것이고 사흘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부활 예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해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저들에게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품었던 메시야적 기대감을 깡그리 뒤집어 놓았습니다. 참 메시야가 그렇게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역자 신성 모독자로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자로 죽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봐 죽으면 끝이야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27장에서 끝났다면, 마가복음이 15장에서 끝났다면, 누가복음이 23장에서 끝났다면, 요한복음이 19장에서 끝났다면 예수님은 메시야로 자처하며 로마제국과 충돌했다가 실패하고 자기 어리석음에 대한 최종적인 값을 죽음으로 지불한 또 하나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실패자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활 이야기가 네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가된 성경 한 장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뒤집어 졌습니다. 새로운 창조가 옛 창조의 한 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이전 것과는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3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고전15:3-4) 죽음에서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에서 그가 살아나셨다!’ 증거 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가 살아나셨다고 부활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슬픔과 근심에 잠겨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생명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좌절 절망 고난의 깊은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20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71:19-20) 주께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큰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심한 고난이 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죽음과 절망과 고통의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우리를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입니다.

 

엠마오 도상에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동행하셨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고 암담하기 그지 않는 상황 속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시간은 무작정 흘러가는 것 같고 쓸쓸함과 허무함만이 내 인생을 지배해 버린 것 같습니까?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는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떡을 떼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주님이 생명의 능력임을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여기 뜨겁다(카이오메네)’불타다’ ‘큰 감화를 받아 마음이 못 견딜 정도로 달아오르다의 뜻입니다. 그들에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뜨거움이 그들이 마음에 차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명의 능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내 생명의 능력이심이 믿어지고 주님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벅차오름이 있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경험하는 부활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소망 없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인하여 힘이 나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부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살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두 가지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축사 즉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누가는 왜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성만찬이며 혁명적 기독교를 이야기 합니다. 사도행전 243-47절에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생명의 능력을 살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주일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가 다시 사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합니다. 그가 죽음에서 다시 사셨다 선포합니다. 그가 다시 사셨다!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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