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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4일 <교회의 능력>
2022-04-24 13:49:1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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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6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의 생일입니다. 66년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더니 제 아내 나이라고 합니다. 목회실에서는 성경이 66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권수 만큼의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제 교회 생일을 축하하는 우리교회 신앙의 다음 세대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신앙공동체, 성도의 교제 등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정의는 교회는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안에 숱한 문제와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인간이 모인 이 교회를 두고 양과 이리가 함께 있는 곳이라고 함으로 교회의 불완전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완전하고 모순과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교회가 세워진 이래 이 역사 안에서 단 한 번도 그 생명이 끊어졌거나 그 뿌리가 송두리 채 뽑아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역사 속에 숱하게 많은 나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수많은 공동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지만 약해 보이는 교회의 그 생명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의 생명력은 계속 될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지닌 능력이 깃들입니다.

 

교회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저는 감격으로 벅찬 마음과 회개하며 성찰하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교회 초창기에 있었던 믿음의 순수성과 열심이 오늘 날의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간 상처 위에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믿음과 교회를 세웠습니다. 19564월 마지막 주일 그날이 부활절이었는데 227명의 교우들이 한성학교 강당을 빌려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 진리가 살아야 하고 그 복음이 증거 되고 그 진리를 인하여 영혼과 삶의 진정으로 변화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66년을 지내오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교회로 살아 계신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맺어오게 하심으로 교회의 능력을 기억하며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위해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창립주일에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처음 교회를 세울 때만큼의 열정과 헌신과 자기고백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팬데믹 광야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믿음이 약해지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불신앙으로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하지 않았나 성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간절하고 절실한 생명적인 관계를 소홀히 하고 그 밖의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가하는 성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중심이 아니라 나의 이익과 편리와 내 목적을 우선하여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죄와 타락의 문제가 깃들이며 우리의 믿음 없음이 교회의 능력을 약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일은 우리에게 성찰과 함께 회개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능력은 무엇으로 이어져 가는 것입니까? 우리 안에 무엇이 있어야 교회가 능력을 더해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첫째로 교회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나옵니다.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본문말씀이 증거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고 쉐마들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교회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말씀도 처음 교회는 사도들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증거 합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언약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교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가나안 입성 1세대와 그 아들과 손자들이 가나안에서 이 법을 기준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본질이며 신앙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선포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전력을 다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유일신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명령(미츠와)은 상대에게 채임을 지우고 침묵이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상대방을 세우고 어떤 직위에 임명함으로 양자 간에 깊은 결속을 맺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규례(후킴)는 이미l 문서로 기록된 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에 속하는 것입니다. 법도(미쉬파트)는 재판관이 심판할 때에 기준으로 삼는 법전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 세 가지 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경문을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3:2-10,   13:11-16절,  6:4-9,  11:13-23

이 경문을 유대인들은 테필린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능력 있음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경문은 탈선을 방지하기 위한 극약 처방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의 경건을 자랑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는 외식 자기기만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들으라’ ‘들으라’ ‘들으라’ ‘쉐마이것이 하나님 교회의 능력입니다. 66년의 역사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순종함으로 교회의 능력을 나타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교회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입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교회의 능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관계를 가질 때 나타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갖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너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이 말을 들은 삼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있어야 교회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로마제국이 400년 동안 유다를 포함하여 전 유럽을 다스려 왔는데 이제 사면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로마 황제는 과거에 한 것처럼 이 죄를 기독교인에게 돌렸습니다. 네로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디오클레시온 황제도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의 짓이라고 해서 많은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황제는 교회를 불태우고 신앙의 지도자들을 학살하고 교인을 감옥에 넣고 그리스도인을 멸종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고 그들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었습니다. 내란과 전쟁의 혼란으로 치닫는 나라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콘스탄틴은 결정적인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에 앞서 콘스탄틴은 전쟁에 이기게 해달라고 로마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신 보다 더 강하다고 평소 생각해 온 기독교의 신에게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렇게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가던 콘스탄틴은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해 위에 그려진 빛의 십자가를 보았고 그 위에는 이 표로 너는 이기리라고 쓰여 있는 글씨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이 십자가와 글씨를 병사들의 깃발에 써들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티버강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했고 통일된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주후 313년에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믿어도 된다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고 주후 323년 드디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300년 넘게 지하에서만 살아온 교회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믿음 하나 때문에 죽어가야 했던 슬픔, 언제나 밝은 날이 올까를 소망하며 살던 그리스도인들, 이제 그 슬픔이 사라지고 소망이 이루어 졌습니다. 흙먼지 뽀얗게 묻어 있는 이 교회가 하루아침에 로마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 날부터 박해가 없어지고 갇혔던 신자들이 풀려나고 무너진 교회가 재건되고 주일이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되고 감독과 성직자들이 고관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에는 수많은 새신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 됨으로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모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교회는 의례 더 부흥되고 그 신앙은 깊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박해시대의 교회에서 볼 수 없었던 무서운 파벌 싸움과 논쟁이 300년이나 지켜온 순수하고 생명력 있는 믿음과 교회의 능력을 감소시켰습니다.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있습니다. 죽음과 박해 앞에서는 오히려 믿음과 교회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 반대로 신앙의 자유가 넓게 보장되는 순간부터 생명력 있는 믿음과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역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까? 죽음과 박해가 왔기 때문에 믿음과 교회를 지킨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기에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믿음과 교회의 능력은 그것이 박해 시대이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시대이든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의 주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참 삶에 참여하려는 자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박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관계를 가졌기에 믿음과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고 신앙의 자유 앞에 타락한 것은 자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관계를 갖지 못했기에 타락했던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적인 신뢰와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가짐으로 능력 있는 교회를 세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광야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 광야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주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제 여전히 교회의 능력이 세워져 가고 나타나기 위해 부활 주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주님과의 뜨거운 생명적 관계를 맺어 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교회의 능력은 성령의 임재와 함께 나타납니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처음 교회는 말씀을 듣는 중에 찾아오신 성령의 뜨거움을 체험했습니다. 이는 삶의 변화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였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 되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이 낫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용서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사랑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떡을 같이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천국의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높아지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접받으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대접하려고 했고 먼저 섬기려고 했습니다. 섬김의 기회가 오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을 다해 섬겼습니다. 인격이 달라졌습니다. 시각이 변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나만 위해 살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이 교회의 능력이었습니다.

 

처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그들은 세상 속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의 모습으로 타인을 위해 한 알의 썩어져 가는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을 태우는 빛으로, 자신을 녹이는 소금으로 사랑과 화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갔던 것입니다. 아현 중앙 교회의 능력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 내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 갈 때에 우리 교회의 미래는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 창립 66주년을 맞이하는 이 아침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교회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소유하고 주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교회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교회의 능력임을 믿고 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감으로 교회의 능력을 더해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땅에 교회의 능력을 더해 감으로 이 나라 이 민족 구원 역사를 일으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교회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머리이신 주여, 귀한 신앙의 유산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으며 순종하게 하시고 부활의 주님 생명을 주시옵소서. 성령의 임재하심과 성령의 능력 안에 거함으로 주의 역사를 이루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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