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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21년 7월 18일 <땅의 길 광야 길 그 길>
2021-07-18 12:02:5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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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의 시대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면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교역자들이 교우들에게 전화로 교회에 나오시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천국 가서 하나님께서 뭐하다 왔냐 물으시면 교인들 교회 오지 말라고 전화하다가 왔다고 해야 할 지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바이러스의 재난을 종식 시켜주시고 온 세상이 마음껏 주님께 나와 찬양하며 예배하는 날이 속히 오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애굽의 장자는 죽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살리신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유월절 무교절 규례와 처음 난 것에 대한 규례를 준수하라고 거듭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광야 행군이 시작되는 시점에 행군 경로를 선택해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역사적 정당성 가나안 땅 차지함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요셉 유골 이송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요셉의 유언대로 한 것입니다. 창세기5022절로 26절에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미이라로 보관된 요셉의 유골을 들고 나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간 그 백성을 인도하시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동행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이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면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되는 성화의 훈련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루하루 그리스도 닮기를 결단하며 영적인 전투를 벌여가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절기에 우리는 더욱 성령의 인도하심과 충만하심을 구하며 성화의 훈련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둔 시점에 다락방 강화를 하시기 전에 요한복음 13장에는 가룟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 자신이 떠나가실 것을 말씀함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의기소침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운 없어 무기력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권면하십니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제자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시 떠나심은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들이 거처할 장소를 예비하시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며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혀 알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도마가 질문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예수님은 진리 생명의 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미 나는 ~이다 에고 에이미하시면서 나는 양의 문이다(10:7-9) 나는 선한 목자라(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 길이 존재합니다. ‘땅의 길 광야 길 그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땅의 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최단거리 직선코스로 고센지방에서 지중해를 옆에 두고 블레셋 사람이 거주하는 가자(Gaza)를 통해 가는 길입니다. 사나흘이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애굽의 18왕조 19왕조에서 왕이 빈번히 오가던 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왕의 길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별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7:13-14)에서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은 찾는 사람이 많지만 그 끝은 멸망의 자리가 되지만 좁은 길은 찾는 자가 적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통행이 이루어지며 주변에 편의 시설이 있는 넓은 길이지만 거기에는 호전적으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편하고 넓은 길이지만 블레셋의 위험이 가득한 길이었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길입니다. 땅의 길입니다.

 

우리의 삶의 길에는 이처럼 넓은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이고 그럭저럭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입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지만 블레셋의 유혹과 시험이 가득하여 결국 멸망으로 몰려가게 되는 길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도하다’(나하)라는 말의 의미는 이끌다라는 것인데 이 단어는 때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와 깊은 관련을 갖고 사용되었습니다. 이때는 인도한다는 뜻보다 치리한다’ ‘지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인도한다는 것은 주로 정신적이거나 신앙적인 면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절한 도우심과 삼라만상을 움직이시는 권능이란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출애굽 경로를 정하시고 이끄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도하시고 치리하시는 궁극적인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방편으로 그리고 앞날을 내다보고 그들에게 친절한 도움을 주시기 위해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의 길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에 이 길을 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길입니다. 하늘 백성이 가야할 길은 땅의 길이 아닙니다. 땅의 넓은 길이 아니라 하늘의 좁은 길을 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홍해의 광야 길입니다.

 

‘17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블레셋의 땅의 길과는 대조되는 홍해의 광야의 길입니다. 매우 먼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 길을 택하셨습니다. 블레셋과 싸울 만한 힘이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전투력이 월등한 블레셋과 지금 막 탈출한 난민 이스라엘과는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전쟁을 보면 분명 애굽 땅으로 돌아갈 것임을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블레셋과 만나지 않도록 먼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시고 돌보신 것입니다.

 

340m 수심의 홍해(얌 수프) 갈대의 바다 그 바다 색이 붉은 홍색이었습니다. 그 지역사람의 피부색, 그들이 사는 해안가 산의 붉음, 붉은 색의 해조, 이것들 때문에 바다가 홍색으로 보여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습니다. 선회 우회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유골을 들고 나왔습니다. 탈출하는 백성에게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유골 보다 귀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유골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이라로 보관되어 있던 요셉의 시신은 쉐퍼드 왕의 수도였던 타니스(Tanis)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50:24-25) 유골을 취하여 들고 나온 것은 이 출애굽이야 말로 믿음의 조상들 특히 요셉이 절대적으로 신뢰한 하나님과의 언약 성취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유골은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실 확실한 증표였기 때문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모세를 비롯한 그 백성의 뿌리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조상의 뼈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뼈를 들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유언을 했던 것입니다. 뼈일망정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입니다. 홍해의 광야 길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었습니다. 힘들고 멀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입니다.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하나님은 그 백성 앞에서 가셨습니다. 나아갈 바를 친히 지도하시고 이끄셨습니다. 그 눈에 보이는 표적인 불기둥 구름기둥을 통해 함께 하셨습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깊이 개입하시고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구체적인 표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 백성 한가운데 임재해계시면서 모든 환경적인 악조건 추위와 더위를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만 절대 보호와 절대 안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에서 벗어나서는 살길이 없는 곳이 홍해 광야 길입니다.

 

가깝고 쉬운 길을 버려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로 가게 하심은 골탕 먹이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깊은 배려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홍해 광야길로 인도하시는 목적은 오직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손을 잡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물과 양식이 없는 광야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홍해 광야 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해답이 되어주신 길입니다. 그들이 홍해의 광야 길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죄와 죽음 세상 가운데서 안전하게 거하며 하늘 가나안을 향해 갈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임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높음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홍해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야에서 -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있네 /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 /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떠나서 저 가나안 땅까지 가는 노정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고로 이 시간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보호하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해주시고 광야 홍해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너희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원하셔서 열 가지 재앙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주야로 항오를 벌여서 이렇게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저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하는 것을 깊이 새기도록 하고 깊이 감동하고 감격한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광야 길을 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마음으로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 길 곧 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내딛는 길로 말미암아 제자들의 믿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밀접하고 최종적인 삶의 교제의 가능성을 말하시며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열어주려는 것이 예수의 '떠나심'의 의미이며 목적입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그 길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최종적이며 영원한 삶의 교제입니다. 이 길에서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거기로 인도하는 그 길 곧 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백한 현실과 영원한 생명은 이 의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을 가는 사람에게 이미 지금 그의 진리와 생명이 되기 위하여 다가오십니다. 오직 이 만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버지께서 이 길을 통해서 먼저 사람들에게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육신하셨습니다. ‘그 길 곧 길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 곧 길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리학입니다. 왕의 길인 땅의 길입니다. 정치, 경제, 군사의 대제국으로 성공, 출세, 쟁취, 업적, 승리, 전투, 힘을 세상 중심 가치를 말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영원하지 않습니다. 힘으로 영혼구원을 이룬 역사가 없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그래서 로마에 갔더니 거기에 구원이 없었습니다. 왕의 길 땅의 길에서 돌이키시는 주님 앞에 심령을 찢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 길 곧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로드맵입니다. 죄인의 죄를 해결하는 길이신 주님, 죽음과 생명 중에 생명의 길을 보이신 주님, 진리와 비진리 중에 진리를 보이신 주님, 복과 저주 중에 복된 길이신 주님, 우리 주 예수님이 길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길로 삼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길과 진리와 생명을 삼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중심 사상은 길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을 포함하여 어떤 성서학자는 이 구절을 나는 참되고 살아있는 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생명을 경험하게 되는 길입니다. 이 길은 진리에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5:32-33)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뜻하신 길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을에 와서 길을 묻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먼저 우측으로 돌고 그리고 좌측으로 도시오. 그리고 광장을 건너서 교회를 지나 오른쪽 세 번째 길로 들어서면 왼편의 네 번째 길이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그런 설명을 듣고 가는 사람은 반드시 두세 차례 더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오시오, 제가 거기를 압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경우 이 안내해준 분은 우리 일행의 길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길 곧 길 예수님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언이나 지시나 충고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을 잡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갈 때에만 두려워도 염려도 부끄러움도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그 길 곧 길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걸어야할 길이 예수님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따라야하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예수님을 따르는 한에 있어서 그의 길이 나의 길이 되고 그의 삶이 나의 삶이 되고 그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고 그의 진리가 나의 진리가 되고 그분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 곧 길이라고 하신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는 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그 길 곧 길이십니다. 진리이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에 따르는 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밟고 걷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성도 여러분을 보실 때에 저기 예수님이 간다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 곧 길 예수 그리스도 유일하신 그 길을 걷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길이 넓은 길 왕의 땅의 길이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로 가는 그 길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안전하게 하십니다. 동행하십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십니다. 홍해 광야 길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가신 그 길 곧 길 예수 그리스도를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시대가 주는 고난을 뚫고 그 길 곧 길을 따라 진리 생명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이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속히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로 그 길 곧 길예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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